210804.png

설교 낭독

                                  제   목 :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본   문 : 출 1:12~21

                                  설교문 : 박건용 목사

바로가 이스라엘의 인구증가를 두려워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합니다. 고된 노역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게 함으로 인구증가를 억제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였습니다.

이에 바로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서 히브리 여인들이 출산할 때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리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를 살려둡니다. 절대 권력자인 바로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바로 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장 17절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7절의 ‘두려워하였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레’라는 단어입니다. 같은 단어가 21절에도 사용되었는데 개역개정 성경은 이를 ‘경외하였으므로’라고 번역했습니다.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이 ‘야레’라는 단어는 두려워하다, 경외한다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파들이 하나님께 가진 두려움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인정하는 자가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 곧 경건한 공경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경외하다’의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앞에서 확실하게 죽음을 내릴 수 있는 바로가 더 두려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보이는 절대 권력자 바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였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말살하고자 했던 이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었으며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의 번성과 이스라엘을 통해 보내실 메시야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산파였던 십브라와 브아의 이름은 전형적인 히브리 이름입니다. 이들이 히브리인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들이었다면, 그 약속마저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었기에 약속을 믿었을 것이며, 더욱더 바로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파들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집안을 흥왕케 하십니다(21절).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크고 놀라운 은혜와 복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고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명기 5장 29절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시편 103편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이 충돌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을 뿐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한없는 자비와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공의와 심판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진노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속에서 주의 은혜 누리시는 성도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